가장임차인 가려내는 세 개의 관문 — 전입, 채권의 탄생, 채권의 죽음
선순위 전입세대가 “받을 돈이 있어 그걸 보증금으로 하고 산다”고 주장하는 물건 — 지난 10호에서 다룬 그 사안입니다. 초보는 이런 물건 앞에서 겁을 먹습니다. 임대차 성립, 상계, 전환, 대항력, 통정허위… 쟁점이 대여섯 개인데, 이걸 다 공부해서 다 따져야 하나.
아닙니다. 오늘 말씀드릴 것은 하나의 법칙입니다.
성립요건은 전부 지켜야 하지만, 무너뜨리는 데는 하나면 된다.
비대칭 전쟁입니다
권리의 성립요건은 “그리고”로 묶여 있습니다. 유치권이 서려면 채권도 있어야 하고, 견련성도 있어야 하고, 점유도 계속돼야 하고, 그 점유가 경매개시 전이어야 합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전체가 무너집니다.
이 구조가 만드는 것이 비대칭입니다. 주장하는 쪽은 요건 전부를 지켜야 하고, 다투는 쪽은 하나만 뚫으면 됩니다. 그러니 다투는 쪽의 전략은 자명합니다. 모든 요건과 싸우지 말 것. 가장 큰 구멍 하나만 팔 것.
그럼 어느 구멍이 큰 구멍일까요. 기준이 있습니다.
상대가 손댈 수 없는 기록일수록, 큰 구멍이다.
본인이 만들 수 있는 증거 — 계약서, 확인서, 사진 — 는 작은 구멍입니다. 외형을 갖추기 쉬워서, 거기서 다투면 감정과 증인이 오가는 긴 싸움이 됩니다. 반면 제3자가 만든 기록 — 전입세대열람, 현황조사서, 등기부, 법원 접수일 — 은 큰 구멍입니다. 상대가 위조할 수도, 소급해 고칠 수도 없으니, 서류 한 장이 판을 끝냅니다.
살짝 귀띔하자면, 유치권 다툼의 고수들이 “공사를 했느냐”(외형 갖추기 쉬운 작은 구멍)가 아니라 집행관 현황조사서의 점유 시점(상대가 못 고치는 큰 구멍)부터 여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유치권 이야기는 따로 한 편을 쓰겠습니다. 오늘은 이 법칙을 가장임차인에 적용해 봅니다.
세 개의 관문 — 앞이 뚫려야, 다음을 엽니다
관문이 세 개인데, 앞 관문이 뚫려야만 다음 관문을 열어볼 필요가 생깁니다.
관문 ① — 전입이 있는가. 전입세대열람에 아무도 없다면, 여기서 끝입니다. 임대차가 성립했는지, 상계가 있었는지는 판단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임대차가 성립했다고 가정하더라도 대항력 요건(인도+주민등록)이 빠졌으니까요. 가장 쉬운 관문이 가장 먼저입니다.
관문 ② — 그 채권은 태어난 적이 있는가. 전입이 있다면 이제 실질로 들어갑니다. 보증금으로 전환됐다는 그 “받을 돈”이 실재했는지. 가족·특수관계인 사이의 채권이라면 금전이 실제 오간 흔적(이체내역, 차용 경위)부터 봐야 합니다. 채권 자체가 허위라면, 전환이니 상계니 따질 재료가 없습니다.
관문 ③ — 그 채권은 죽었는가. 채권이 실재했다면 마지막 관문입니다. 전환이 진짜라면 옛 채권은 상계로 소멸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대여금을 청구하고 있거나, 차용증을 쥐고 이자를 받고 있거나, 불리해지자 배당요구를 철회한다면 — 본인의 행동이 “전환은 없었다”는 자백입니다.
보이십니까. 관문의 순서가 곧 구멍의 크기 순서입니다. ①은 전입세대열람 한 장(제3자 기록), ②는 금전 흐름(위조 어려움), ③은 행동의 궤적(본인도 못 지우는 흔적). 뒤로 갈수록 심사가 무거워지니, 앞에서 끝날 사건을 뒤에서 시작할 이유가 없습니다.
입찰자에게는 조사 순서표입니다
이 법칙은 소송 전략이기 전에, 입찰 전 조사의 순서표입니다. 수상한 선순위 전입세대를 만나면 — 전입세대열람, 채권자의 무상거주확인서 유무, 배당요구와 그 철회 이력 순으로 보십시오. 전부 상대가 못 고치는 기록들이고, 관문 순서 그대로입니다.
물론 마지막 당부는 같습니다. 큰 구멍이 보인다고 승소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고, 최종 판정은 법정의 몫입니다. 다만 큰 구멍이 선명한 물건과 구멍이 안 보이는 물건은 — 위험의 가격이 다르고, 따라서 입찰가가 같을 수 없습니다.
본 칼럼의 판례 기준: 대법원 2002. 1. 8. 선고 2001다47535 판결, 대법원 2007. 12. 13. 선고 2007다55088 판결(10호 참조). 개별 사안의 판단은 반드시 기록 전체로 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요건과 싸우지 마라.
상대가 손댈 수 없는 기록, 그 한 장부터 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