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찰되면 끝일까요 — 경매 물건이라는 닫힌 상자
지난 30호에서는 상자 속 고양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두 상태가 겹친 채로 있다는 사고실험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 상자를 경매 물건에 겹쳐 보겠습니다.
개찰하기 전까지, 낙찰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경매 물건도 닫힌 상자입니다
입찰기일 아침, 그 물건의 낙찰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감정가도, 최저가도, 시세도 낙찰가가 아닙니다. 그날 입찰함에 봉투가 몇 장 들어오는지, 그 안에 얼마가 적혀 있는지에 따라 정해집니다. 집행관이 봉투를 여는 개찰의 순간에야 가격 하나와 낙찰자 한 사람이 정해집니다.
그 전까지 상자 안에는 여러 결과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번 회차에 높게 팔릴 수도 있고, 최저가 근처에서 팔릴 수도 있고, 아무도 쓰지 않아 유찰될 수도 있습니다. 기일이 바뀌거나 사건이 취하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진짜이고 나머지가 가짜인 것이 아닙니다. 채권자도, 입찰하는 분도, 법원도 개찰 전에는 그날의 낙찰가를 알 수 없습니다.
유찰은 고양이의 죽음이 아닙니다
유찰을 "인기 없는 물건이라는 판정", 상자 속 고양이가 죽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유찰은 상자를 열어 결론을 낸 것이 아닙니다. 상자를 열지 못한 채 더 낮은 최저가로 다시 닫은 것에 가깝습니다. 가능성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한 번 유찰될 때마다 최저가는 법원에 따라 대체로 20% 또는 30%씩 내려갑니다. 감정가 1억원짜리 물건이라면 회차별 최저가는 이렇게 됩니다.
네 번째 회차에 들어선 물건이라도, 상자 안에는 첫 회차 가격 근처에서 팔릴 가능성부터 다음 회차로 넘어갈 가능성까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최저가가 낮아졌다는 것은 그 가운데 가장 낮은 자리가 내려왔다는 뜻일 뿐, 낙찰가가 그 자리에서 정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최저가는 낙찰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 번 유찰된 물건일수록 오히려 조심해서 봐야 합니다. 최저가가 낮아지면 지켜보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오기도 하고, 그날 누가 오느냐에 따라 낙찰가가 크게 갈립니다. 26호에서 본 부산 아파트처럼 같은 동네에서도 석 달 사이 한 건당 응찰자 수가 크게 바뀝니다.
최저가는 상자 안에서 가장 낮은 자리일 뿐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상자를 입찰하는 분의 자리에서 보겠습니다. 가격은 회차마다 내려가는데, 언제 봉투를 내야 할까요.
유찰 때 최저가를 얼마나 낮출지(저감률)는 법원마다 정하며 대체로 20% 또는 30%입니다. 위 표는 감정가 1억원을 가정한 계산 예시이며 특정 사건이 아닙니다. 부산 응찰자 수는 26호의 집계를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