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을 뽑지 않기로 했습니다 — 낙찰가 연구소를 열며
저희는 낙찰가 연구소를 열었습니다. 이전에는 낙찰가 경기장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예상낙찰가를 내는 알고리즘 열두 가지를 세워두고, 매달 실제 낙찰가로 채점해 순위를 매겼습니다. 가장 잘 맞히는 것을 골라 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하고, 공정하고, 무엇보다 설명하기 쉬웠습니다.
그 전제가 틀렸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허용오차를 바꿨더니 1등이 바뀌었습니다
“맞혔다”는 말에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실제 낙찰가와 5% 안에 들어야 맞힌 걸까요, 20%면 충분할까요. 저희는 그동안 한 가지 허용오차만 써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폭을 바꿔가며 다시 재보았습니다.
집계한 287개 지역·종류 가운데 285곳에서 1등이 바뀌었습니다.
그중 92곳은 더 심했습니다. ±5%로 재면 A가 1등, ±10%로 재면 B가 1등, ±15%는 C, ±20%는 D — 네 번 재는 동안 1등이 네 번 다 달랐습니다.
±5, ±10, ±15, ±20.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숫자들입니다. 저희가 만들어낸 기준도 아닙니다. 그것만 흔들어도 순위가 뒤집힌다면, “가장 정확한 하나”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좋다고 볼지 정하지 않으면, 무엇이 최고인지도 정할 수 없었습니다.
1등을 한 번도 못 한 것이 가장 믿을 만했습니다
더 뜻밖이었던 것은 이겁니다. 어느 기준에서도 1등을 하지 못했는데, 어느 기준으로 봐도 2~4위를 지킨 알고리즘들이 있었습니다.
순위표로만 보면 이들은 영원히 눈에 띄지 않습니다. 1등 칸에 한 번도 이름이 오르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실전에서 필요한 것은 가끔 눈부신 쪽이 아니라, 어떤 날에도 크게 빗나가지 않는 쪽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했습니다. 적중률 99%와 98%는 사실상 같은 성적입니다. 표본이 조금만 달라져도 뒤바뀝니다. 그 차이로 줄을 세우고 1등만 쓰는 것은, 재현되지 않는 우연에 기대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안의 편견 하나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열두 가지 중 열한 가지는 세계적으로 검증된 표준 알고리즘이고, 하나는 저희가 경매를 위해 직접 만든 것입니다. 레이더 스탯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예상낙찰가를 가장 많이 낸 것은 레이더 스탯이었습니다. 65.4%. 압도적인 1위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화면은 그 사실을 이상하게 적고 있었습니다. 1위인 그것을 “통계”라고 낮춰 부르고, 그것이 이겼을 때조차 “AI가 못 이겼다”는 식으로 썼습니다. 마치 AI가 이겨야 정상인데 그러지 못했다는 투로요.
왜 그랬을까 돌아보니, AI가 더 정확해야 한다는 믿음이 저희 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근거가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데이터는 처음부터 반대를 말하고 있었는데, 저희가 그렇게 읽지 않았을 뿐입니다.
더 근본적인 것
그러다 더 앞선 질문에 닿았습니다. 애초에 낙찰가란 무엇인가.
낙찰가는 기계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같은 물건을 두 번 경매에 부치면 다른 값이 나옵니다. 사람이 늘 합리적으로 입찰하지도 않습니다. 꼭 갖고 싶어서 무리하는 사람이 있고, 마음이 급해서 물러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지역은 조건이 비슷한 물건들의 낙찰가가 감정가 대비 40%대에서 190%대까지 벌어집니다. 경매 사건이 적을 수밖에 없는 지방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서울 한복판, 이름만 대면 아는 동네들이 그 상위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답 하나를 맞히는 일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 목표였습니다. 저희는 성립하지 않는 목표를 놓고 열두 가지 방법으로 경쟁시켜온 셈입니다.
예측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낙찰가 경기장을 닫습니다
오늘부터 낙찰가 연구소를 출범합니다.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라, 하는 일을 바꿉니다.
마지막 줄이 저희에게 가장 어려운 대목이었습니다. 어렵다고 말하는 순간 실력이 없어 보일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입찰해보신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어떤 물건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요. 아는 분들 앞에서 “정확합니다”라고 말하는 쪽이 오히려 신뢰를 잃는 길이었습니다.
앞으로
관측하는 방법을 더 늘릴 생각입니다. 새 알고리즘을 더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같은 방법이라도 얼마 동안의 사례를 보느냐, 어디까지를 같은 동네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이 나옵니다. 저희가 늘리려는 것은 방법의 개수가 아니라 보는 눈의 각도입니다.
한 가지는 약속드립니다. 성적은 지는 기록까지 그대로 공개하겠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틀렸던 것을 이렇게 적어두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본문의 수치는 2026년 8월 관측 기준이며, 낙찰가 연구소 화면에서 언제든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실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 — 그것이 저희가 지키려는 선입니다.